독신훈련(獨身訓練)
이장희
귀밑머리가 백발의 숲이다. 아내가 자신의 머리를 염색한다고 부산하다. 손을 뒤로 돌려 속속들이 처리하느라 밀림 속을 헤매듯 힘겨워한다. 그 뒷머리를 처연히 바라보고 있자니, 한 친구가 상처했다는 조금 전의 전갈에 생각이 미친다. 먼저 가는 불행도, 부득이 혼자 남겨지는 애달픔까지도 벗어날 방도는 없는 것인가.
사별을 대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면 해괴한 착상이라 손사래를 칠까? 예방접종을 하는 셈 치고 ‘독신훈련’을 한번 해 보자는 말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고가 아니면 둘이 한 날 한시에 숨을 거두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 짝 잃은 원앙이 되어 험난한 파도 앞에 놓일 날이 언제일지 모른다. 배우자의 도움 없이 남은 생을 기품과 아취를 지닌 인간으로 살아가게 스스로를 단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손길이 미치지 않은 아내의 머리카락에 염색약을 펴 발라 주면서 나도 몰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의 머릿결이 삼단 같이 고왔던 가을이었다. 감을 따다가 한숨 돌리고 있던 참에 장모님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전화였다. 입원 채비를 하시던 장인께서 한발 앞서 가셨다는 더 참담한 상황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혼자 남는다는 것이 그렇게 암울했던 것일까. 두 분의 연이은 영면을 더없는 행복이라며 부러워들 했다. 수년(垂年)의 어르신들은 유족의 슬픔을 그렇게들 위로했다. 간절한 영탄사였는지 모르지만 내 귀에는 개성난봉가나 매화타령쯤으로 들려 언짢았다.
독신훈련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뭐니 뭐니 해도 ‘혼자 잘 노는 것’이 첫째다. 오래 전 어느 신문의 주주로 인연을 맺었는데 최근 ‘이달의 책’ 신청을 통해 공짜 책 읽기의 길이 트였다. 신간서적이 사랑스런 애인처럼 안겨 왔다. 내용과 느낌을 정리하기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몰입해 열독했다. 인터넷을 뒤져 활동 영역과 독서의 분야를 점점 넓혀나갔다. 그러구러 요즘도 혼자서 잘 노는 나만의 취미인 독서와 서평 쓰기가 제법 자리 잡아 조금은 안심이다.
독신훈련으로 필요한 두 번째는 ‘혼자 살아갈 능력'이다. 대개의 남자들은 물 한 모금, 수건 한 장도 누가 챙겨주기 바라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며칠 전 서랍 속의 무엇을 찾다가 무명지 손톱 아래 살이 벗겨졌다. 응급처치도 한 손으로는 쉽지 않았다. 낫는 데 시간도 걸리고 손을 놀릴 때마다 불거진 혹처럼 거추장스러웠다. 그런 성가심이 독신훈련을 소리 없이 재촉하고 있다. 아내와의 거리 두기, 그녀의 그림자를 지우는 훈련에 매진하라고.
독신훈련의 세 번째는 ‘할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적당한 운동으로 체중도 마침맞게 줄였다. 절묘한 동양학 강의에 넋이 나가기도 하고 철학포럼에 개근을 노린다. 흙을 빚어 예술의 향기에 빠져 보며, 철부지 같은 마음으로 글쓰기 수업을 받는다. 일주일에 하루는 아동센터의 교사로, 이틀은 평생교육의 학생 신분에 충실하다. 집에서 세끼 해결하는 ‘삼식이’ 아닌 ‘일식이’란 처지가 얼마나 떳떳한지 모른다. 소득이 얼마냐는 문제는 이미 나를 떠났다.
늘그막에 ‘건강’과 ‘돈’을 제일로 꼽는 수가 많다. 할일에 충실한 자에게 병마는 알아서 피한다고 믿는다. 건강한 몸을 바탕으로 욕심까지 비운다면 돈은 쓰기 나름이 아닐까. 허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능률을 어떻게 올릴지 노동의 최소화와 보람의 극대화를 꿈꾼다. 텃밭을 일구어 채소도 가꾸고 깨나 콩, 고추를 수확해 보라. 웰빙, 웰다잉을 위한 정방향이 아니겠는가. 몸도 마음도 닦을 현명한 길이 더 없는지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일도 훈련과정이다.
독신훈련의 마지막은 ‘마음을 주고받을 사람’ 이다. 무극은 태극이라 했던가. 절실하다는 것은 달리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나에게 극진한 유일의 친구, 배우자 없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대비해야 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느낌은 왜일까. 밥 짓기와 설거지, 빨래는 전부터 해왔다. 하나 김장이니 장 담그기 같은 건 평생 면제였음을 시인한다. 궂은 일 마다않고 반(半) 남자로 굳세게 살아온 아내에게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뽐낸다면 도전이다. 그녀의 눈엔 내가 아직 철부지이니까.
누가 더 장수할는지 알 수가 없다. 나 편하자고 아내의 수명이 길기만을 갈망하지 않겠다. 잠드는 시간도 숨소리도 서로 다르다. 시선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한다. 억지로 얽어매기보다는 적당히 나누고 베풀어야지. 그러니 때로는 따로 지낼 일이다. 철새가 창공 위를 끝없이 가르며 무리지어 운무를 이어가지만 서로 따로따로이듯, 그러한 적절한 떨어짐도 있어야겠다.
솔제니친의 소설 『암병동』에는 알라신이 여러 동물들을 창제하고 각각 50년씩 수명을 준다. 인간은 25년의 수명을 받고 불만을 토로했다. 말과 개, 원숭이에게서 25년씩을 구걸해 얻었다. 인간은 100년을 살게 되지만, 애초에 받은 25년만 인간으로 살 뿐, 그 다음 25년은 말처럼 일하며, 다음 25년은 개처럼 짖고, 나머지는 원숭이처럼 조롱거리가 되어 살아야 했다. 인간의 한평생을 이처럼 잘 꼬집어 빗댈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원숭이처럼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다. 혼자라면 더더욱 나이에 걸맞은 수련과 처신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하지 않는가. 사람은 분명히 홀로 태어나서 떠날 때 역시 혼자이다. 사는 동안에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내와 한 날 한 시에 숨을 거두면 대운이겠지만 차례로 사라진다 해도 독신훈련을 쌓은 다음에야 남은 자의 막막함은 훨씬 덜할 것이다.
독신훈련은 가족의 안전을 염두에 둔 개인적 민방위훈련이다. 가입 제한이 없는 암보험과도 같고, 불입금 없는 산재보험이기도 하다. 성인병을 염려하는 체력단련이요, 씀씀이가 헤프지도 넘치지도 않게 할 경제 연수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며 상대를 품게 하는 애정 상담이며 매일 하는 일 있어 보람 찾는 직업훈련이다. 그런고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독신훈련’ 중이다.